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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한자 이야기

여유(餘裕)는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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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간 약속에 약간의 강박이 있습니다.

이는 제 모든 행동에 스며드는 집착입니다.

저는 결코 지각하지 않기 위해 30분 일찍 직장에 도착하는 사람입니다.

약속이 있을 때도 시간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고 미리 도착하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일찍 도착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는 아닙니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여유롭게 도착해서,

약속 시간을 기다리는 삶의 느긋한 속도였습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저 멀리 약속이 있어 늦지 않으려고 준비를 서둘러 마쳤습니다.

지금 당장 출발하면 정해진 시간보다 1시간은 일찍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저는 잠시 숨을 고르고 그 고요함 속에서 문뜩 그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그 여유(餘裕)라는 것에 강박을 느끼고,
조금 전의 과거와 지금을 분주함의 소용돌이에 내몰고 있었던게 아닐까?


매일 아침, 저는 여유로움이라는 그 어떤 것을 위해 바쁘게 삶을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허둥지둥 했던 탓에 종종 차 열쇠 등 물건을 집에 두고 오거나,

고양이에게 줄 아침밥을 까먹고는 했습니다. 


여유(餘裕) 남을 여, 넉넉할 유를 씁니다.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를 뜻하죠.

저는 다른 의미로써의 여유(餘裕)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넉넉하다는 느낌보다는 과하다는 느낌으로 흘러넘치는 분주함을 말이죠.

진정한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걸까요?

과거나 현재의 무게를 끊임없이 질질 끌고

먼 미래를 위해 유보해 두고 진정한 여가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여유(餘裕)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유(餘裕)의 개념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끊임없는 시간의 요구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고,

생산성의 사슬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고,

존재의 단순한 기쁨을 허용하라는 요청과도 같은 것을 말입니다.

효율성과 진보를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우리는

지나가는 순간을 음미하는 섬세한 시간들을 종종 소홀히 합니다.

우리는 앞에 놓여 있는 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현재의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잠시 멈추고 향기로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지금을 한 번 음미해 봅시다.

종종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순간에서 위안을 찾으면서 평범한 것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

의도와 만족을 모두 가지고 사는 것.

여유의 진정한 본질을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 평온한 지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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