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삼도천(三途川)을 건넌다고 합니다.
'저승의 강'은 고대 중국에서는 '황천(黃泉)', 서양에서는 '스틱스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라는 이야기(영화로도 나왔죠)에서 알 수 있듯,
오래 전부터 이승과 저승을 가로막는 강이 있다고 생각했고,
많은 문화에서 각기 다른 설화들이 이를 받침하고 있습니다.
삼도천(三途川)은 불교 용어입니다.
삼도(三途)는 삼악도인 지옥도, 축생도, 아귀도를 의미하고, 천은 강을 의미합니다.
죽은자들이 이 강을 그냥 건너지는 않습니다.
생전의 업에 따라 삼도천을 건너는 길이 각각 나뉘는데,
업의 좋음과 나쁨을 상중하로 나누어
좋음에 해당하면 유교도(보석 다리),
보통에 해당하면 산수뢰(얕은 물),
나쁨에 해당하면 강심연(깊고 위험한 물)을 건너게 됩니다.
위의 내용은 불교에서 전하는 지장보살 발심인연시왕경(地藏菩薩發心因緣十王經)에서 유례합니다.
일본의 민간 신앙에서는 삼도천 물가의 자갈밭에서
부모보다 일찍 죽는 불효를 저지른 어린 아이들이 돌탑을 쌓는다고 하며,
이런 아이들을 지장보살이 구원했다 는 사이노카와라라는 설화가 있습니다.
황천(黃泉)은 고대 중국에서 저승의 강으로, 죽은 자들이 건너야 하는 강입니다.
황천은 지하세계를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여, 黃泉國(황천국)이라고도 불렸습니다.
황천을 건너면 저승의 문인 鬼門關(귀문관)에 도착하게 되며,
건너기 전에 閻羅王(염라왕)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황천은 직역하자면 '노란 강’을 의미하는데,
이는 지하세계가 어두워서 흙색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그럼 황하는??)
황천은 삼국지, 삼국지연의, 신비전, 황천의 화신 등 여러 작품에 등장하며,
대부분 저승의 강이나 지하세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스틱스강은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저승의 강으로,
죽은 자들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카론의 배가 다니는 곳입니다.
스틱스강은 슬픔과 고통의 강으로 불리며, 저승을 7바퀴(또는 9바퀴) 감싸고 흐릅니다.
스틱스강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가장 중요한 맹세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 강을 걸고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하며, 신들도 어길 수 없습니다.
만일 어긴다면 신들에겐 1년 동안 숨도 못 쉬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사실상 가사 상태로 지내게 되며,
이후 9년 동안 신들의 회의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스틱스강에 목욕한 사람은 몸이 강철과 같이 단단하게 되어
창이나 칼이나 화살 등 그 어떤 무기도 뚫을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스틱스강은 페르세우스와 메두사, 아킬레우스와 파에톤,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 등
여러 신화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특히 아킬레우스를 이 강에 담궈 불사의 몸으로 만들었지만
그를 잡았던 발목만은 강물에 닿지 않아 약점이 되었다는,
일명 '아킬레스의 건' 으로 유명하죠.
저승에 흐르는 강이라는 설화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명확한 하나의 사유를 찾을 순 없지만 몇 가지 대안적인 추론이 가능합니다.
그 중 하나는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인간의 공통적인 궁금증과 두려움이
저승에 흐르는 강이라는 상징을 통해 표현되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저승의 강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분리하는 경계이자
역행이 불가능한 일방통행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죽음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승의 강을 건너면 망자들은 자신의 과거를 잊거나
정화되거나 재판을 받는 등 다양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는 인간의 죄책감이나 정의감, 재탄생의 희망 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강의 역할은 물로써 씻어내는, 바로 '정화' 인 것이죠.
또 다른 가설은 저승에 흐르는 강이라는 설화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에 흐르는 다섯 개의 강은
후에 단테의 신곡 저승편에서도 저승의 다섯 강으로 등장합니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의 뱃사공 카론은
죽은 자들에게서 뱃삯을 받아 저승의 강을 건너주었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시신의 입에 동전을 넣어주었다는 관습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후에 기독교에서도 영혼의 안식을 위해
시신에 동전을 넣어주거나 강에 무언가를 띄워 보내는 의식으로 계승되었습니다.
반면 기독교에서는 요단강을 구원과 새로운 출발, 죽음과 부활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단강은 다른 문화의 그것과는 달리 실제 존재하는 강이며, 해석에도 차이가 있는 것이죠.
요단강은 구약성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과 약속의 땅으로의 진입,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의 의미로 여겨집니다.
강이라는 것은 고대로부터 경계의 의미로써,
위에서 언급한 상징적 의미 외에도 인간의 삶에 다양한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강을 건너기 힘들었던 시대에는 지역 간의 경계 역할이었으며, 중요한 수자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다를 보기 힘들었던 옛 사람들의 눈에는,
거칠고 검게 흐르는 강물이 죽음을 삼키는 신의 영역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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