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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한자 이야기

사주(四柱) -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개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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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주(四柱) 보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좋아한다는 표현의 의미는 사주(四柱)를 보는 것을 즐기는 것일 수도 있고, 그 것에 대한 강력한 믿음 때문일 수도 있죠. 사주(四柱)는 대게 한 사람의 운명을 칭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정확한 의미는 출생 년, 월, 일, 시 를 의미하며 이 네 가지를 4개의 기둥으로 묘사한 단어입니다. 넉 사, 기둥 주 를 씁니다. 이를 해석하기 위해 각각 10간(十干 또는 천간(天干))과 12지(十二支)에서 따온 글자를 두 글자씩 합하여 모두 여덟 자로 나타낸 것이 팔자(八字)입니다. 합해서 사주팔자(四柱八字)라는 단어가 되고,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팔자가 사납다' 할 때의 팔자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사주(四柱)는 정확히는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 입니다.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점술과 개인의 운세를 분석하는 체계로 출발한 학문이었습니다. 이를 당(唐)나라 때 이허중(李許中)이 발전시키고 송나라(宋代) 서자평(徐子平)이 개량하였죠. 이 시스템은 중국 춘추 시대에 두드러진 음양 및 오행 이론에서 원리를 도출합니다.

 이허중의 작품 『이허중 명서』는 개인의 운명이 태어난 연월일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생년월일을 기준으로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분석하여 통칭 당사주 또는 당나라의 사주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명리학은 특히 자평명리학을 일컫는데, 송나라 때 서자평이 지은 책 연해자평』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서자평은 생년월일시를 통합하여 4개의 기둥과 8개의 문자를 만들어 개인의 운명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을 제공함으로써 시스템을 확장했습니다.

 명나라 때 태조 주원장의 책사 성의백(誠意伯)이 사주명리학의 3대 고전 중 하나인 『적천수』를 저술함으로써 명리학의 이론적 틀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이후 만민영은 과거의 저작과 저자들의 주장과 지식을 모은 백과사전 같은 책인 『삼명통회』를 편찬하여 사주 명리학의 종합 참고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청나라 때 여춘태는 작자 미상의 '난강망(欄江網)'을 수록한 궁통보감』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심효첨은 『자평진전』을 출간하여 오행체제의 완성에 기여하였습니다. 이 세 권은 『적천수』와 함께 사주명리학의 삼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주명리학이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은 고려시대 즘으로 보이지만, 최초로 확인된 문헌은 태종 1401년부터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선 초기에 명리학은 국가 시험에 포함된 과학, 잡학, 명학 등으로 알려진 다양한 과목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공식적인 지식 체계가 되었고 국가와 왕실의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제도권에서 명리학의 위상은 쇠퇴하였습니다. 일본의 민족정신 탄압의 일환으로 명리학을 비롯한 많은 전통 학문이 지하로 밀려나 미신 취급을 받았죠. 이러한 억압은 명리학이 자연, 우주, 음양, 오행의 원리에 근거한 정통 학문으로 인정받는 것을 막았습니다.

 수세기 동안 인간은 타고난 호기심에 이끌려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숙고해 왔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파악하기 어려운 특성은 알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내리는 선택에 의해 형성됩니다. 음양과 오행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점을 치고 인간의 운명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둔 명리학은 숙명론의 한 형태입니다. 그러나 사주명리학을 단지 운세를 판단할 목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운과 불행이 얽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순하게 여겨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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