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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한자 이야기

대한민국 교육은 썩었습니다 - 선생(先生)과 학생(學生), 그리고 학부모(學父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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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선생님에 대한 교권 침해가 크나큰 사회 이슈가 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서울 서이초 교사 사건을 계기로 시작되긴 했지만,

잃어버린 교권과 선생님의 사생활 침해 논란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중인 일이었죠.

 

이는 단순히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에서 끝나지 않고,

학생 - 학부모 - 선생님으로 연결되는 다자간의 스캔들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격체로서

그들 또한 무리한 학부모들의 요구에 시달리고 상처받는 사람임을

많은 사람들에게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오히려 이 단순한 명제를 학부모와 학생들은 무시하고 있음에

사람들은 경악하고 분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한자로 先生 이라고 씁니다.

직역하면 먼저 태어난 사람입니다.

지금은 주로 교사(敎師) 직종의 사람들에게 이런 호칭을 쓰지만,

예전에는 학식과 덕이 높은 자에게만 붙이는 칭호 였습니다.

즉, 먼저 태어났다 하여 무조건 선생(先生)이 되는 것은 아니었죠.


선생(先生) 호칭의 역사는 중국 남송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이전에도 해당 단어가 존재하긴 하였으나,

명확한 호칭으로 자리 잡은 것은 그 시기였습니다.

남송 시대 선생(先生)의 정의는

'관직에 있는 사람을, 역시 관직에 있지만 직급이 조금 낮은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 이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에 비슷하게 전승되어,

학식과 덕이 높은 자를 일컫는 말로 자리잡았습니다.

대표적으로 퇴계 이황 선생, 율곡 이이 선생, 백범 김구 선생 등을 꼽을 수 있는데요.

정작 퇴계 이황은 이 '선생'이라는 호칭을 감히 쓸 수 없다며 죽을 때까지 꺼려 왔다고 합니다.


학생은 한자로 學生 으로 씁니다.

직역하자면 배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 입니다.

지금은 주로 학교에 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사람은 본디 태어나면서 꾸준히 배우는 존재이기에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학생으로 지내는 것이 필연적입니다.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흔히 묘비 새겨지거나 제사를 지낼 때 쓰는 글귀 중 하나인데요.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배우는 학생으로 인생을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신령이시여 나타나서 자리에 임하소서'

 

위의 표현은 조선시대에는 벼슬을 지내지 못한 사람(남자)에게만 쓰는 것이었습니다.

즉, 벼슬을 지내지 못했기에 평생 '학생' 신분을 유지했다라는 뜻이지요.


불과 몇십년전 만 해도, 학생에 대한 인권침해가 문제시 되었습니다.

엎드려벋쳐는 기본, 따귀나 몽둥이로 피멍이 들도록 때리는 등

가혹하리만치 이어지는 처벌과 구타 수준의 체벌 등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불과 20~30년 전에 실제 벌어지는 일이었죠.

 

이는 2000년 이후, 교육 현장에서의 체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점차 사라졌고,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학생이 선생님에게 행하는 갖가지 폭력들로

교육 현장이 어지러워지고 있는 가운데,

학부모 또한 이에 한 몫을 더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소위 미쳐 날뛰는 학생 아닌 학생들의 행동들로

많은 기성세대들은 체벌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안맞아봐서 버릇없이 크고 있다는 논리이죠.

 

학생과 선생, 학부모와 선생간의 이러한 갈등은

어쩌면 학교의 기능이 이상한 방식으로 축소, 변형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학교는 본디 배움의 길을 걸어야 하는 학생들에게

학업적인 성취뿐만 아니라 인성적인 가르침을 주는 기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는 '직업 양성소' 의 역할에만 충실한 듯 합니다.

인성과 사회 도덕적 윤리에 대한 가르침 보다는

국영수 위주의 과목에 중점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게 하는 교육이 전부인 상태입니다.

 

결국 학원의 방침과 다를 것이 없으며,

때문에 학생들도 학교와 선생님을 점수 매깁니다.

교육 내용이 서툴면 무시하고, 주요 과목이 아니면 참여 자체를 기피하기도 하죠.

 

이러한 생각은 학부모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져

자신들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혼이 나거나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

수업 내용이 부실하거나 수능 공부 외의 것을 강조하면,

곧장 달려가거나 전화를 하여 선생님을 괴롭히는 구조를 탄생시켰습니다.


결국, 최근 불거지는 교육계의 논란은

학생 - 학부모 - 선생님, 삼자 간의 문제만은 아닌 것입니다.

 

학교,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교육이

아직 다져지지 않은 어린 학생들의 인성과 사회성을 키우지 않고,

국영수, 수능 등급, 점수 등으로만 채워 넣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나중에 이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올바른 사회 구성원이 되기 이전에

세상을 등급 매기고, 숫자로만 판단하게 됩니다.

 

선생님과 학생,

먼저 태어나 가르침을 주고, 평생 배움을 놓지 않는 이 관계에 대한

제조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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