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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한자 이야기

위화 소설 『원청(文城)』 - 어디에도 있는, 아무데도 없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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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청(文城)』은 위화의 장편 소설입니다. 위화는 1960년 생으로 현대 중국 소설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며, 대표작으로 『첫 번째 기숙사』, 『허삼관매혈기(許三觀賣血記)』, 『살아간다는 것』, 『형제』 등이 있습니다.
 
 소설 『원청(文城)』을 읽어내려가며 등장인물과 지역을 지칭하는 한자에 깃든 의미를 되새겨보니, 사람은 이름대로 살고 지명은 그 지역의 특색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등장인물과 지명에 담긴 한자에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서 소설 『원청(文城)』을 한번 풀어보고자 합니다. 
 
『원청(文城)』은 크게 린샹푸(林詳福 - 임상부)의 시점, 그리고 샤오메이(小美 - 소미)의 시점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 중 샤오메이의 시점은 어찌보면 전체 이야기의 해석과도 같으며, 이는 스포가 될 수 있기에 본문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1. 줄거리

 시대는 청나라 말기(1900년 즈음으로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맞기 전), 폭풍우가 몰아친 마을 '시진(溪鎭 - 계진)'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원청(文城)'이라는 곳을 찾고 있었다. 이곳 시진보다 훨씬 멀리, 북쪽에서 온 이 남자의 이름은 '린샹푸(林詳福 - 임상부)'. 집채만한 봇다리 짐과 가슴에는 갓난 아이를 메고 있었다. 그에겐 남다른 사정이 있었다.
 
 린샹푸의 고향은 황허 북쪽으로, 그 곳에서 그는 목공일을 하였으나 집안 또한 부호여서 많은 전답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였고, 집안의 대를 잇고자 혼처를 알아보는 중이었다. 여러번 중매를 통해 짝을 만나보았으나, 모두 인연이 아닌 듯 했다. 그러던 중에 '샤오메이'와 '아창(阿强 - 아강)' 이라는 남매가 방문한다. 그들은 남쪽 멀리 '원청'에서 왔다고 하며, 자신들은 북경으로 가던 중 사정이 생겨 하룻밤 묵기를 청하였다가, 비용 문제를 들어 샤오메이는 남고 아창만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그때부터 린샹푸와 샤오메이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고, 둘은 곧 사랑에 빠졌다. 린샹푸는 우직한 성격으로 샤오메이를 전적으로 믿었기에 그가 가문 대대로 모아둔 금괴를 보여주고 청혼을 하는데, 정식 결혼식을 치르기 전 샤오메이가 사라진다. 샤오메이가 금괴 일부를 가지고 달아난 것. 린샹푸는 상심하였으나 샤오메이에 대한 마음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석달 남짓도 지나기 전에, 샤오메이가 돌아왔다. 그녀의 수중에 금괴는 없었고, 대신 린샹푸의 아이를 품고 있었다.
 
 배신당한 린샹푸였지만, 기꺼이 그녀를 용서하고 정식으로 혼례를 치르고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아이가 젖을 떼기도 전에 (정확히는 한달 만에) 다시 린샹푸를 떠난다. 린샹푸는 이번에는 딸을 데리고 샤오메이를 찾으러 나선다. 집과 전답은 가신인 텐다(田大 - 전대)에게 맡기고 기나긴 여정을 떠나... 지금의 시진에까지 이르렀다.
 
 린샹푸는 샤오메이가 고향이라 말했던 원청을 찾아온 것인데,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그런 곳을 모른다 답하였다. 하지만 샤오메이의 사투리를 똑똑히 기억했고, 이 곳 시진이 가장 그 어투와 동일하다는 판단에 시진이 곧 원청임을, '샤오메이', '아창' 또한 가명 이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시진에 머물며 딸아이를 키우고, 본인의 기술인 목공일을 시작하며 시진에서의 삶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시진에서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린샹푸의 딸은 어느덧 10살이 되었다. 딸아이의 이름은 린바이자(林百家 - 임백가). 처음 시진에 왔을 때, 100여 가구를 돌아다니며 젖동냥을 한 것에서 이름 붙여졌다. 린샹푸는 지난 10여년 동안 샤오메이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진 어디에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샤오메이, 아창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여러명 찾긴 했으나 동명이인일 뿐이었다.
 
 지난 평온했던 날들이 지나가고, 시진에는 전란의 기운이 휩쓴다. 당시는 청나라가 중화민국으로 정권 교체가 일어나던 참이었다. 때문에 국민혁명군과 북양군 간의 전투가 마을 인근에서 벌어졌고, 토비라 불리는 강도단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이 때, 시진의 대부호이자 상인회 회장인 구이민(顧益民 - 고익민)은 북양군 무리들이 마을을 약탈하려 할 때에는 회유책으로, 토비들에게는 민병대를 모집하여 대항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였고, 마을 곳곳에서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그의 대처로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종국에는 구이민 본인이 토비들에게 납치를 당하게 된다. 토비들은 인질의 댓가로 시진에서 가지고 있던 무기(총기류)를 원했고, 이를 협상하기 위해 린샹푸가 나서기로 했다. 린샹푸는 토비의 우두머리를 만났고 협상 물품도 지참하였으나, 토비들은 그를 거짓으로 우롱하였고 이에 격분한 린샹푸는 토비들에게 덤벼들었다 도리어 목숨을 잃게 된다. 그의 시신은 함께 협상을 떠났던 사람(쩡완푸 - 사공)이 수습하여 돌아왔고, 구이민은 다른 이(천융량)의 도움으로 풀려난다. 린샹푸의 가장 측근이었던 천융량(陳永良 - 진영량)은 그의 죽음에 분노하여 또 다른 민병대를 모집하였고, 토비들을 소탕하며 마침내 그 우두머리(장도끼)를 죽임으로써 복수에 성공한다. 린샹푸의 시신은 고향땅의 가신인 텐다 형제들이 수습하여 그는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2. 이름들

 주인공 린샹푸는 한자로 林詳福(임상부)입니다. 목공일을 대대로 이어온 것이 그의 성(수풀 림)에 반영되어 있고, 상부(詳福)는 자세한 것을 간직하다 라는 뜻을 담고 있으니, 즉 그가 간직하며 살아온 샤오메이에 대한 마음으로 해석됩니다.(福은 복 복이기도 하지만 간직할 부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도착한 시진은 한자로 溪鎭 입니다. 시내 계, 진압할 진을 쓰고 있는데, 시진과 다른 지역 사이에 모두 작은 강이 흐르고 있어 다른 지역을 가기 위해서는 항상 배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시진은 명, 청 시대에 상업 도시로 실존했던 곳이나, 현재는 지명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샤오메이(小美)아창(阿强)이라는 이름은 한자 자체의 뜻보다는 당시에 그러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음에 주목했습니다. 린샹푸는 수십명의 샤오메이와 아창을 찾았다고 하였지만 모두 허사였죠. 후에 밝혀지지만 아창 또한 본명이 아니었습니다.
 
 린샹푸의 딸 린바이자(林百家)의 이름은 줄거리에 밝힌 바, 100여 가구를 돌며 젖동냥을 했음에 비롯했습니다. 그녀는 총명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묘사되며 많은 사내들이 그녀에게 반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어린 시절을 오래 함께 보낸 천야오우(陳曜武)에게 향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구이민의 아들 구퉁녠(顧同年)과 정략 결혼을 한 상태이기에, 린샹푸는 천야오우와 린바이자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그녀를 멀리 상하이로 유학을 보냅니다. 때문에 린샹푸의 죽음을 당시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린샹푸 고향 땅의 가신인 텐다(田大)는 여러 형제들이 있는데, 모두 이름이 텐얼(田二), 텐싼(田三), 텐쓰(田四), 텐우(田五)와 같은 방식입니다. 이를테면 행인 1, 2, 3, 4로 표현한 것이죠. 다만, 밭 전(田)은 그가 주로 행했던 업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도 가신이지만 주로 밭일을 돕는 역할로 나와 있습니다.
 
 린샹푸가 시진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천융량(陳永良)입니다. 陳永良은 베풀 진, 영원할 영, 어질 량 을 쓰고 있습니다. 그는 갓 시진에 들어와 오갈데 없는 린샹푸를 어진 마음으로 거두어들인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의리는 린샹푸의 죽음에 대한 복수 뿐만 아니라 여러 장면에서 묘사됩니다.
 
 천융량에겐 두 아들이 있는데, 그 중 천야오우(陳曜武)베풀 진, 빛날 요, 굳셀 무를 쓰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린바이자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였습니다. 굳센 마음을 빛낸 그의 역할이 이름에 담겨 있는 셈입니다.
 
 마을의 지주 구이민顧益民, 돌볼 고, 이로울 익, 백성 민을 씁니다. 시진 사람들의 생사을 돌본 그의 역할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죠. 
 
 구이민에게는 여러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 중 아들들의 이름은 텐다 형제와 비슷하게 구퉁녠(顧同年), 구퉁웨(顧同月), 구퉁르(顧同日), 구퉁천(顧同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맏 아들 구퉁녠을 제외하면 달, 해, 별 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구퉁녠은 망나니 이자 양아치로 등장합니다. 年이 아첨할 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의 성품을 반영한 부분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구이민에게는 또 두 딸이 있는데 구퉁쓰(顧同思), 구퉁넨(顧同念) 입니다. 생각할 사, 생각할 념으로 둘의 이름을 합치면 사념(思念)이 되는데 아들들과는 별개의 규칙을 보이지만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역할은 없습니다.
 
 북양군의 부관으로 등장하는 인물이자 린바이자에게 연모의 마음을 품게된 리위안청李完成 이라 쓰고 있습니다. 그는 17세의 나이임에도 1,000명이 넘는 군대의 부관이 되어, 이미 완성(完成)된 인물상을 보여주는 케이스입니다. 린바이자에게는 훗날을 기약하며 물러갔으나 뒷 이야기는 전하지 않습니다.
 
 등장 인물 중 본명을 쓰지 않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바로 토비들 입니다. 그들은 강도짓를 일삼는 삶에 걸맞게 이름을 감추고 있는 것이라 해석됩니다. 대신 별명들로 불리며, 장도끼(도끼를 잘 씀), 물수제비(물 수제비를 잘 던져서??), 다섯째(다섯 째 라서?), 표범(??), 스님(그나마 인품이 어진 탓에) 등으로 표현되죠. 유일하게 스님만이 이야기 중에 본명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스님만이 유일하게 토비 일을 그만두고 린샹푸의 복수를 돕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름이 없는 토비 무리는 짐승이나 다를바 없는 족속들인 셈입니다.
 
 샤오메이가 고향이라고 밝힌, 원청文城으로 글 문, 성 성 을 쓰고 있습니다. 이는 문자로만 존재하는 지역을 뜻합니다. 이미 제목이자 이야기의 목적인 원청(文城)을 통해, 린샹푸가 쫓는 허상과 샤오메이의 거짓을 암시하고 있었던 거죠.


3. 감상

 서두에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원청이 있다.' 작가가 직접 한말은 아니지만 해당 표현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이며, 원청이 찾을 수 없는 도시인 듯, 누구인 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는 일어나는 감정의 서사임을 밝히죠.
 이야기는 절정에 치달을 수록 비참함의 연속입니다. 전쟁의 참혹함, 그 것은 온전히 일반 백성들에게 다가옵니다. 약탈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죠. 그리고 일부는 토비 무리와 같이 가해자로 돌변하기도 하구요. 그 속에 가족과 사람들을 지키려 고군분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작가의 말 중 '원청과 같은 이야기가 대한제국(시대상을 반영하여, 당시 이름을 쓴 듯 합니다)에도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저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이 떠올랐습니다. 너무나도 선명히, 아직도 남아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 들이죠. 도리어 저는 묻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중국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그런 '원청의 이야기'를 묻고 사는 건 아닌지요?


 린샹푸의 죽음, 그리고 귀향으로 본편은 끝나고, '또 다른 이야기'를 통해 샤오메이의 시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샤오메이의 성장 과정과 린샹푸와의 만남, 그녀가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밝혀지죠. 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주인공인 린샹푸의 죽음 마저도 스포가 되지 않을 만큼, 놀랍고도 안타까운 이야기가 펼쳐지니 직접 확인하시길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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