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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한자 이야기

스마트폰이 빼앗은 삼매경(三昧境), 몰입(沒入)의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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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어느 하나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삼매경(三昧境)에 빠졌다.' 라고 표현합니다.

'게임 삼매경에 빠졌다.', '독서 삼매경이다' 와 같은 식으로 말이죠.

이 단어는 불교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풍부하고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구성 요소를 분해하여 개별 의미를 이해한 다음 집합적 해석을 살펴보겠습니다.

  • 삼(三) :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숫자 3을 의미합니다. 다만, 불교에서 숫자 3은 과거, 현재, 미래 또는 존재의 세 영역(욕망, 형태, 무형태)을 포괄하는 완전성을 나타냅니다. 즉, '모든 것'. 영어 All, Whloe 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 매(昧) : 이 문자는 새벽, 어둠 등의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이 문맥에서는 무지 또는 망상을 나타냅니다. 진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가려진 상태를 나타냅니다.
  • 경(境) : 이 문자는 영역,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존재의 특정한 상태 또는 정신적, 영적 환경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삼매경은 불교에서 깊은 집중 또는 명상에 몰두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산만함과 번뇌가없는, 심오한 수준의 평온함과 명료함을 달성하는 마음의 상태인 것이죠.


 20세기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러한 '몰입(沒入)' 상태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몰입(沒入), 영어로 Flow 로 지칭한 이 상태는

개인이 자신의 기술 수준과 제시된 도전에 일치하는 작업에 완전히 몰두할 때 발생합니다. 

이 상태에서 개인은 활력이 넘치는 집중력, 깊은 즐거움, 왜곡된 시간 감각을 경험합니다. 

그들은 현재 순간에 완전히 몰두하고 자의식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칙센트미하이의 이론은 몰입 경험이 행복, 만족 및 개인적 성장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몰입은 종종 스포츠, 예술, 음악, 일과 같은 활동과 연관되지만 삶의 다양한 측면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는 많은 기술적 발달로 인해 삼매경, 또는 몰입의 상태를 방해받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세요.

밥을 먹을 때 스마트폰을 바라보지 않았던 적이 언제인가요?

화장실에 갔을 때(큰 일^^) 스마트폰을 두고 갔다가 심리적 공항 상태를 겪은 적이 있었나요?

비행기를 탔을 때 스마트폰의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음에 불편했던 적은요?

걸을 때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주변 풍경을 즐겼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항상 그 네모난 화면을 바라봅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그렇게나 자주 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얼핏 보기에 스마트폰에 몰입하고 있는 상태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그 어떤 것을 보는 것이지 단지 그 네모난 기계가 좋아서 보는 것은 아니죠.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제공되는 갖가지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멀티테스킹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일컷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바로 스몸비(smombie)입니다. 스마트폰(Smart phone)과 좀비(Zombie)의 합성어로,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스마트폰과 관련된 또 다른 현대인의 증후군은 넘쳐납니다.

스마트폰이 주는 강한 자극의 컨텐츠만 소비하다보니, 약한 자극에는 뇌가 더디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

스마트폰으로만 소통하는 것이 편하여 직접 대면하는 것을 꺼리는 '디지털 격리 증후군',

스마트'폰'이지만 '폰'의 기능은 사용하지 않아 발생한 '콜 포비아'.

'거북목 증후군', '손목 터널 증후군' 등은 잦은 스마트폰 사용에 따른 또 다른 신체 증후군으로 나타납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이전의 심리학자 스키너는 '강화' 이론을 제시한바 있습니다.

동물, 심지어 사람도 특정 행동을 하게끔 유도하는 '강화'에 의한 동기부여를 제시하면

그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라는 것인데요.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비둘기를 새 장에 가둔 뒤, 버튼을 누르면 먹이를 주도록 실험 환경을 구성합니다.

이게 끝입니다. '버튼을 누르면 먹이를 얻는다.'

비둘기에게 버튼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오니, 비둘기는 먹이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버튼을 누릅니다.

이 것이 반복되면, 비둘기는 먹이가 제공되지 않아도 버튼을 계속 누르게 됩니다.



 
이는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실험 환경은 좀 더 복잡해졌지만,

사람들은 이제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스마트폰을 열어봅니다.

사람들에게 원래 주어진 '강화'는 저마다 달랐습니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의 메시지였을 수도 있고,

게임을 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보고싶었던 동영상이 업로드된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화가 지속되면서 이젠 이유없이 스마트폰을 열어봅니다.

아무 것도 없지만 그래도 열고, 또 엽니다.

사람들은 이제 비둘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스마트폰 중독을 이미 인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디지털 디톡스가 유행했기도 했죠.

스마트폰이 삶의 편리함만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마트폰은 우리에게서 긍정적인 의미의 삼매경과 몰입 상태를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기업의 이윤이 자리잡고 있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더 많이 볼 수록, 기업들이 이윤을 얻는 구조 말입니다.

지금 내가 왜 스마트폰을 또 열어보는가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통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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