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절대신이 있었다. 절대신은 세상을 빚어내기 위해 수많은 하위 신들을 만들었다. 산, 강물, 대지, 바다, 바람... 모든 자연을 각기 신들로 하여금 다스리도록 했다. 하위 신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그들의 피조물을 만들어 냈다. 산에서는 나무들이, 물에서는 물고기들이, 대지에서는 동물들이, 바람에서는 새들이 태어났다. 오직 인간만은 절대신이 직접 그의 모습을 본떠 대지에 머물도록 했다.
하위 신들은 비록 그들의 피조물만큼은 아니었지만 유한한 삶을 살아야 했다. 때문에 수명이 다하거든 그들은 대를 거쳐 그들의 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대를 잇지 못하거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하위 신들도 있었다.
절대 신은 문뜩 기나긴 세월동안 그의 자식들이 한낱 재로 흩어짐에 공허함을 느꼈다. 때로는 도태였고 때로는 배신, 때로는 종족의 멸망이었다. 절대자로서의 고독이 긴 시간동안 엄습했다.
절대 신은 고민 끝에, 아무 영역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와 같이 영겁의 시간을 함께할 존재를 빚어내었다. 불멸의 신. 불멸의 신은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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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이따금 유희를 즐겼다. 그 것은 그들의 피조물로 모습을 바꾸어, 인간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었다. 인간 세상에서 그들은 나무였고, 고양이였으며 사람이기도 했다.
"이 번에 내려가면, 언제 돌아올텐가?"
절대 신은 지금 불멸의 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글쎄, 100년은 안걸리겠지?"
"자네가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면, 여기는 적막하겠군. 술 친구도 없고 말이야."
"홀로 영겁의 시간을 버텨왔으면서, 100년 정도면 낮잠 한숨 자고 나면 금방일꺼야."
"조심히 다녀오게. 그래, 이 번에는 무엇이 되기로 했나?"
"글쎄 ㅎㅎ"
불멸의 신은 그렇게 유희를 위해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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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랑
2022년 서울. 편의점의 문이 열리고 말끔히 입은 훤칠한 남자가 들어선다. 날이 선 검은색 정장, 명품 시계, 여유로운 미소, 기품있는 모습에 압도될 정도다. 남자는 고른 물건을 계산대에 내려 놓는다.
"6,400원 입니다. 적립카드 있으세요? 봉투 필요하세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물건을 챙기는 편의점을 나가는 남자. 편의점 알바는 그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불멸의 신, 그는 지금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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